녹색성장의 한 축으로 등장한 스마트 그리드 기술을 실생활에서 시험하기 위한 스마트 그리드 실증단지가 2009년 8월 31일 제주 구좌읍에서 착공식을 열었다. 민간 주도의 해외 여타 실증단지와 달리,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진행 중인 제주 실증단지는 약 2,400억 원(정부 685억 원, 민간 1,71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구좌읍 일대의 약 6천 가구를 대상으로 스마트 그리드 5대 분야에 대한 실증이 이뤄지며, 전력, 통신, 가전, 자동차 등 스마트 그리드 유관 기업들로 구성된 12개 컨소시엄 168개 기업이 참여한다. 2013년 최종 구축을 목표로 현재 실증단지는 1단계 인프라 구축(2009.12~2011.5)을 일단락 짓고, 2단계 통합 운용(2011.6~2013.5)을 준비 중이다.
혼저옵서예! '어서오세요'란 의미의 구수한 사투리가 맨 처음 반겨주는 이곳. 세계 최대 규모의 스마트 그리드 실증단지 구축이 한창인 제주는 5대 분야에서 미래 새로운 생활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스마트 그리드라는 개념이 갓 등장했을 무렵에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스마트 그리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스마트 그리드가 눈에 보이지 않는 최첨단 기술의 집결처다 보니 일반 소비자들 역시 이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이중에서도 비교적 그 변화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분야가 '스마트 플레이스Smart Place'다. 가장 빠른 속도로 개발이 이뤄지는 분야인 동시에 일반 소비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분야기도 하다.
스마트 플레이스에서는 똑똑한 전력 사용을 유도하는 기기가 보편화돼 소비자의 능동적인 전력 사용을 도와준다. 전력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전력 공급자와 사용자 간 양방향 통신이 가능한 '스마트미터', 전력 정보 제공은 물론 스마트 가전과 연동해 제어까지 하는 'IHD', 소비자의 에너지와 시간, 관리비용을 줄여주는 '스마트 가전'등이 대표 기기다. SK텔레콤 스마트그리드사업본부의 박경종 부장은 "김녕리, 동북리, 월정리 지역을 대상으로 현재 451가구에 스마트미터를 설치했으며, 5월 말이면 총 600가구 전체에 설치가 완료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LG 스마트 그리드 체험관의 외관에 설치된 15㎾ 태양광발전 시스템과
체험관 내부 모습. 이곳에서는 실제 숙박을 통해 스마트 그리드 기술을
체험하는 것이 가능하다. '스마트 서버'는 각종 전력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스마트 가전과 신재생기기를 제어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스마트 플레이스는 현재 KEPCO, SK텔레콤, KT, LG전자 등 4개 컨소시엄이 참여 중이다. 각 컨소시엄이 운영하는 홍보관을 방문하면 실제 가정내 생활환경처럼 꾸민 공간에서 스마트 가전을 이용한 에너지 제어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 중 구좌읍 하도리에 위치한 LG 스마트 그리드 체험관은 21동의 펜션 가운데 한 동을 체험관으로 꾸며 숙박을 통해 스마트 그리드 기술을 만나볼 수 있다. 외부에 보이는 15㎾ 태양광 시스템과 2㎾ 소형 풍력발전기가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내부로 들어가면 거실에는 벽걸이형 TV와 에어컨이, 주방에는 냉장고와 세탁기가 놓여 있다. 겉으로 봐서는 일반 가전제품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스마트'란 용어가 앞에 붙은 것을 발견한다. 이들 가전제품은 모두 지그비 ZigBee를 통해 '스마트 서버'와 양방향 무선 통신이 가능하다. ' 스마트 서버'는 집 안의 모든 전력을 파악해 제어하며, 에너지 사용량과 발전량 정보를 제공한다. 즉, 소비자는 별다른 수고 없이 '스마트 서버'를 터치로 조작함으로써 조명을 껐다 켜고, 태양광 누적 발전량이 얼마인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스마트 냉장고와 스마트 세탁기의 LCD 화면에는 현재 전기요금이 저 · 중 · 고로 표시되며, 요금이 비싼 시간대에는 최소 필요 기능만 작동하고 불필요한 사용은 스스로 제어한다. 그러나 편리한 기능이 많은 만큼 사전 설명이나 지식 없이 조작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미 LG 스마트 그리드 체험관을 둘러본 사람들이 남긴 방명록에도 '신기하고 좋다'는 반응과 '아직은 뭐가 뭔지 잘 몰라 어렵다'는 반응이 반반씩이었다.
 1. 종합홍보관 앞 전기자동차 충전소 2 3. 전기자동차 ' 블루온'은 완속 충전
6시간, 급속 충전 25분이 소요되며, 1회 충전으로 140㎞를 갈 수 있다(GS칼
텍스-KT 스마트 그리드 체험관 앞). 4. 이 전기스쿠터는 대학생들이 직접
타 보고 그 성능을 확인해 볼 수 있도록 제주대학교에 곧 보급될 예정이다.
한편, 지난 2월 정부는 현 실증단지에서 실증이 어려운 상업시설, 공장, 아파트 등에 한해 제주 내타 지역으로 실증 범위를 확대키로 했다. 이에 KT는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KT 제주스마트그린센터의 고석범 센터장은 "KT는 세화리, 평대리 일대 일반 가구와 빌딩을 대상으로 스마트 그리드 기반 시스템을 구축 중이며, 이미 섭외를 마친 제주 시내 아파트 단지에도 AMI를 설치할 계획에 있다"라고 밝혔다. GS칼텍스-KT 스마트 그리드 체험관에서는 대형 건물의 효율적 에너지 관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스마트 그리드를 이용해 빌딩의 에너지 낭비를 어떻게 줄이는지 체험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도 활발
GS칼텍스-KT 스마트 그리드 체험관에서 처음으로 전기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현대자동차가 총 400억 원을 들여 개발한 전기자동차 '블루온 BlueOn'은 최대 시속 130㎞로, 고효율 전기 모터와 함께 국내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한 16.4㎾h 전기자동차 전용 리튬 이온 폴리머 배터리를 탑재해 강력한 동력 성능을 갖췄다. 충전에 걸리는 시간은 완속 충전 6시간, 급속 충전 25분이며,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는 140㎞다. 시동을 걸자 계기판에는 현재 충전 상태가 표시되고 주행 가능 거리와 주행 속도를 큼지막한 숫자로 알려줬다. 편안한 승차감에 소음도 없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자 속도도 무리 없이 올라갔다. 전기자동차를 시승한 사람들도 대체로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러한 전기자동차가 상용화되려면 충전 인프라 구축이 필수다. 제주 실증사업에서 스마트 트랜스 포테이션 분야 주관사로 참여 중인 GS칼텍스는 전기자동차 충전소 구축과 운영, 전기자동차 충전이 전력망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로 하는 시스템 구축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한다. GS칼텍스의 육성우 과장은 "제주 해안동의 무수천 주유소를 대표 충전소로 리모델링하면서 기존 주유 설비는 물론 전기자동차 충전소를 운영센터 시설과 병설했다"면서 "GS칼텍스는 연료전지, 태양광발전 등 분산전원과 에너지 저장장치(ESS)를 결합한 충전 인프라 구축을 추진 중이다"라고 말했다.
소비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
지난해 12월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스마트 그리드 소비자 반응 및 태도 조사—제주실증단지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연구대상 총 616명(스마트 그리드 실증단지 내 사용자 310명, 스마트 그리드 실증단지 내 비사용자 306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약 83.8%가 환경 보호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전기 절약에도 약 79.5%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향후 스마트 그리드 보급 · 확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환경 보호와 전기 절약은 스마트 그리드 보급의 궁극적인 취지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스마트 그리드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물며 스마트 그리드 실증사업에 참여 중인 응답자 가운데서도 약 29.03%가 스마트 그리드를 모른다고 답했다. 실증단지에서 만난 사람들도 스마트 그리드의 개념과 의도는 이해한 듯 했으나, 경제적 효과에 보다 치중하는 느낌이었다.
스마트 그리드의 성공은 똑똑한 소비자에 있다. 기기가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소비자가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한낱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다. 실시간 요금제가 도입되면 부지런하고 꼼꼼한 소비자가 경제적 이익을 볼 수 밖에 없다. 효율적인 전기 사용으로 녹색 생활을 실천하는 소비자—이것이 바로 스마트 그리드가 요구하는 인물상이며, 스마트 그리드 시대의 진정한 주인공인 셈이다.
 퇴직 이후 제주가 좋다는 이유 하나로 연고도 없는 제주에 내려와 살고 있다는 성창모 할아버지.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성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카페에 들어서기 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건물 옆에 위치한 3㎾ 태양광발전 시스템이다. SK컨소시엄의 실증사업에 참여 중인 성 할아버지네 카페에는 태양광 시스템 외에도 IHD, 게이트웨이, 스마트 스위치 등이 내부에 설치됐다.
성 할아버지는 태양광 시스템 설치 이후 아직 그럴 듯한 경제적 효과를 보지는 못한 것 같았다. 이유인즉, 겨울철 난방기구로 벽난로가 전부인 성 할아버지네 카페에서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계절은 여름철인데, 정작 태양광 시스템을 설치한 것은 여름의 끝자락인 작년 8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지나가던 차량이 태양광 시스템을 들이박는 바람에 같은 해 11월 재설치가 이뤄졌다. 그러나 함께 실증사업에 참여하는 이웃이 태양광발전을 통해 얻은 전력 사용으로 기본 전기요금밖에 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성 할아버지는 내심 올 여름을 기대하는 눈치다.
스마트 그리드에 대해 묻자, 성 할아버지는 "세세한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집 안에서 자신이 사용한 전력량을 확인하고 그럼으로써 싼 전력 시간대에 전기를 사용토록 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지금까지 성 할아버지는 전기요금 고지서가 날라오면 비로소 '아, 지난 달 내가 전기를 이만큼 썼구나'하고 생각하는 정도지, 평소 전력 사용량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는 IHD로 발전량과 사용량을 실시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해서라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고 했다. IHD에서 제주의 변화무쌍한 날씨 정보도 바로 확인이 가능해 편리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끝으로 성 할아버지는 "실증사업을 위해 무료 설치가 이뤄지고 있고 사업 완료 후에도 계속 사용토록 해 주니까 좋긴 하지만, 만약 소비자가 직접 설치해야 한다면 역시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으리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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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전화영 기자
<Energy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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