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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바닷속 세슘부터 방사능 기체까지… 국내 제염 연구 일취월장
2020년 6월 1일 (월) 00:00:00 |   지면 발행 ( 2020년 6월호 - 전체 보기 )

바닷속 세슘부터 방사능 기체까지… 국내 제염 연구 일취월장
정부, 부가가치 높은 원전해체산업 육성에 팔 걷고 나서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한국도 탈원전 정책을 진행 중이다. 전 세계 수많은 원전들이 그 수명을 다해 이미 해체 중이거나 해체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올해를 기점으로 노후 원전들이 해체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원전해체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새로운 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원전해체 글로벌 시장 규모를 136조 6,100억 원(2030년 기준)이 될 것으로 예측하며 관련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 특히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기술인 ‘제염’은 관련 분야에서 핵심 기술로 손꼽힌다. 전문가들은 제염 기술력 확보가 글로벌 원전해체 시장 선점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15기 원전의 제염작업을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관련 산업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자랑한다. 이번 호에서는 주목할 만한 국내 제염 관련 연구 성과들을 살펴보았다.
 
김수진 기자 자료협조 한국원자력연구원, 울산과학기술원(UNIST), 산업통상자원부
 
바닷물·강산성 조건에서도 세슘 99% 이상 제거 
국내 연구진이 물속 방사성 세슘을 세계 최고 수준의 속도로 제거하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지난 4월 한국 원자력연구원은 양희만 박사팀이 ‘세슘 제거용 꽃 모양 티타늄-페로시아나이드 나노흡착제’(Hf-TiFC, Hollow flower-like Titanium FerroCyanide structure)를 개발 했다고 밝혔다.
 
세슘은 방사성 폐수 정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하지만, 효율적인 제거가 어려웠다. 특히 방사성 폐수 특성상 세슘과 화학적 거동이 비슷한 나트륨, 칼륨 등 경쟁 이온이 다수 섞여 있어 세슘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세슘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다양한 흡착제 개발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제조 과정이 복잡하고 바닷물과 같이 경쟁 이온이 많거나 제염 후 만들어진 폐수처럼 강산성인 환경에서는 세슘 제거 효율이 급격히 저하되는 한계가 있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이번에 개발한 티타늄-페로시아나이드 나노 흡착제는 특별한 구조로 만들어 세슘 흡착 효율을 향상시켰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세슘 흡착에 활용되지 않는 입자 내부는 빈 공간으로 만들어 무게를 줄이고, 입자 표면은 표면적이 큰 겹꽃 모양의 나노구조로 합성했다.
 
그 결과 속이 비어 있지 않은 기존 미립자 형태의 금속-페로시아나이드에 비해 세슘 흡착 속도가 1만 배 빨랐다. 이는 일본 후쿠시마 사고 수습에 사용된 타이타노 실리케이트에 비해 32배 빠른 속도다. 흡착 용량도 뛰어나다. 1 g당 최대 454 ㎎의 세슘을 제거한다. 이는 기존 금속-페로시아나이드 대비 3배, 타이타노 실리케이트 대비 1.7배 뛰어난 결과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나노 흡착제는 실험실이 아닌 실제 환경에서 더욱 유용하다는 장점도 갖췄다. 대표적인 경쟁 이온인 칼륨이 5,000 ppm 이상 들어있는 폐수에서도 세슘을 선택하는 분배계수가 타이타노 실리케이트보다 261배 높았다. 해안에 자리 잡는 원전의 특성상 바닷물에서 세슘을 제거하는 능력 또한 중요한데, 이번 기술을 통해 바닷물 속에서도 세슘을 99.1% 이상 제거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타이타노 실리케이트의 제거율 78.9% 보다 월등히 우수한 결과다.
 
현재 사용되는 세슘 흡착제 대부분은 ?1 이하의 강산성 폐수에서 흡착 성능이 저하된다. 양희만 박사팀은 실제 현장 활용에 집중해 산성에 강한 티타늄을 사용했다. 티타늄과 특별한 형태 덕분에 강산성 폐수에서도 99.8% 이상의 세슘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티타늄을 사용한 타이타노 실리케이트의 81.3% 제거율보다도 월등히 우수한 결과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나노 흡착제는 원자력 시설 사고 시 발생하는 대량의 방사성 폐수나 원전 해체 시 발생하는 강산성의 제염 공정 폐액 처리 시 활용 가능성이 높다. 이 기술은 현재 국내 특허 출원 중이며 미국, 일본, EU 등 해외 특허 출원을 준비하고 있다. 향후 기술 이전을 통해 방사성 세슘을 제거해야 하는 실제 현장에 투입될 계획이다.
 
양희만 박사는 “제조가 쉽고 간편해 상용화의 필수조건인 대량생산도 가능하다”며 “기존 흡착제보다 성능이 우수하고 적은 양으로도 대량의 방사성 폐수를 처리할 수 있어 폐액 처리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원자력기술개발사업으로 수행됐으며 연구 결과는 지난 4월 화학공학 분야의 세계적인 학술지인 ‘케미컬 엔지니어링 저널(Chemical Engineering Journal)’에 게재됐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방사성 세슘을 제거하는 겹꽃 모양의 흡착제를 새로 개발했다. 주사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사진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방사성 세슘 제거하는 겹꽃 모양의 흡착제의 투과전자현미경 사진

 
표면적 넓은 2차원 적층 구조로 흡착력 향상
그간 흡착이 어려운 물질로 알려진 방사능 물질 아이오딘(I₂, 요오드) 기체를 빠르게 제거할 수 있는 물질이 개발됐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백종범 교수팀(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이 ‘수직으로 선 2차원 적층 구조’ (Vertical 2D layered structure)를 구현, 우수한 기체 저장 능력과 위험 물질 흡착성능을 갖는 물질을 개발했다고 지난 4월 밝혔다. 이 물질은 원자 하나 두께로 얇은 층상 물질을 수직으로 세우고 이를 쌓아 올려 층간 결합력은 줄이고 기체가 달라붙을 수 있는 표면적을 넓힌 구조다.
 
그래핀(graphene)처럼 규칙적인 구조를 가지고 얇은 2차원 물질을 기체 저장이나 흡착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많다. 기체가 이동할 수 있는 구멍(기공)이 있고 3차원 물질보다 설계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2차원 물질을 층층이 쌓게 되면 층간에 강한 결합력 때문에 층 사이가 매우 좁아진다. 이 경우 층 사이 표면은 기체 저장이나 흡착에 활용하기 어렵다.
 
백종범 교수팀은 하나의 단위가 되는 고리 모양의 분자, 즉 단위체를 쌓을 때 이를 수직으로 세운 뒤 쌓는 방식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했다. 고리 모양이 서로 마주 볼 경우(수평)에는 층간 결합력이 크지만 수직으로 쌓으면 결합력이 느슨해지는 원리를 이용했다. 층 사이의 결합력이 약해지면 적층(layered) 구조를 만들었을 때 노출되는 표면적이 더 넓다. 게다가 구조가 매우 안정적이어서 600℃의 고온도 잘 견딘다. 제1 저자인 노혁준 연구원(UNIST 에너지공학과 석·박사통합과정)은 “구조물의 모든 부분을 고리 모양으로 만들어 기존 2차원 유기 다공성 구조체보다 화학적, 열적 안정성을 높였다”며 “각종 고온 공정에서도 사용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연구팀은 개발된 이 물질이 기체 저장에 우수한 성능을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방사능 물질인 아이오딘 기체를 빠르게 제거해 향후 활용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에 따르면 개발된 적층 물질의 아이오딘 기체 흡착 속도는 현재까지 개발된 유기 다공성 물질 중 가장 빨랐다.
 
백종범 교수는 “탄소 기반 2차원 물질인 그래핀의 발견 이후 2차원 물질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늘고 있다”며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2차원 구조가 본래 가진 한계점을 극복하고 세계 최초로 세로로 서 있는 2차원 구조를 구현해낸 점이 의미 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4월 게재됐으며 연구 수행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리더연구자지원사업(창의연구)과 BK21 플러스사업, 우수과학연구센터(SRC)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V2D-BBL structure의 아이오딘(I₂) 증기 흡착 능력 및 재활용성 평가. (좌측) 대조군(검은색, PIN)에 비해 기체 저장 성능이 우수함. 또 흡착된 기체에 장비를 통해 자극(sonication)을 가해주면 빠른 속도로 기체를 탈착함(왼쪽 그래프 하단 색상변화). (우측) 여러번 재활용해도 동일한 성능 유지
신개념의 2차원 구조(V2D-BBL structure) 합성 모식도와 적층 구조 비교. (a): 트립티센 헥사민(Triptycene HexAmino, THA)과 나프탈렌테트라카르복실릭 디안하이드라이드(Naphthalenetetracarboxylic DiAnhydride, NDA)의 방향족 고리화 반응을 통해 전체 모양이 방향족 고리인 ‘세로로 선 2차원 적층 구조(V2D-BBL structure)’를 합성했다. 우측 그림은 방향족 고리를 세워서 본 모양. (b), (c): (b)는 일반적인 2차원 물질을 수평(Planar 2D)방향으로 쌓은 구조 (c)는 수직으로 세운 2차원 구조(V2D-BBL) 쌓은 구조. 세로로 선 2차원 구조의 경우 층간 결합이 유연해 드러나는 표면적이 넓다.

 
미래 먹거리 원전해체 생태계 형성 주력
한편,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본격적으로 구체화하면서 원전해체 관련 연구 및 사업도 가시화되고 있다. 사실, 원전해체산업은 선진국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형성돼 있어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이다. 지속적인 기초과학 투자와 관련 연구지원, 원전 해체 현장 경험을 쌓은 선진국 위주로 시장이 선점될 수밖에 없다.
 
실제 선진국 대비 한국의 원전해체 기술력은 다소 미흡하다. 한국은 연구용 원전해체를 제외하면 원전해체 경험이 전무하다. 지난해 4월 정부가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공개한 ‘원전해체산업 육성전략’(이하 육성전략)에 따르면 선진국과의 정량적 기술격차는 평균 82%, 이 가운데 제염기술은 76%의 격차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상업용 원전 해체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실제 격차는 더 클 것으로 추정한다.
 
국내 원전해체산업 생태계는 이제 막 마련되기 시작한 상황이다. 육성전략 내 기업 현황을 살펴보면, 공공기관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고리 1호기 등 가동을 멈춘 원전의 해체를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 사업 물량이 가시화되지 않아 기업의 실제 해체 역량이 미검증 상태다. 그러다 보니 선제적 투자 확대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도 해체나 방사선 관리 등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만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기업 간 협력 네트워크와 기업지원 창구도 미흡하다. 2017년 원전해체산업 민관협의회를 구성한 바 있지만, 소수 산학연 전문가 위주로 운영됐으며 지역 간 교류도 단순 정보 교환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인력 부족도 문제점으로 손꼽힌다. 육성전략에 따르면 2030년에 2,600여 명의 전문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난해 기준 공공기관 전담인력은 250여 명 수준에 불과했다. 이 밖에도 각종 제도와 인프라도 미흡하다. 전문가들은 “원전해체산업 후발주자인 만큼 국가적인 총체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원전해체를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보고 세계 상위 5위 국가를 목표로 생태계 형성에 지원하고 있다. 비록 후발주자이기는 하지만 한국은 원전해체산업의 부가가치가 상당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기술력을 확보한 만큼 승산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해 4월 부처 주요 관계자가 모인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열고 ‘원전해체산업 육성전략’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날 회의에 따르면 먼저 시장 창출과 인프라 구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2022년 하반기 목표인 고리1호기 해체 착수 이전에라도 조기 발주가 가능한 부분을 최대한 발굴해 원전기업의 해체수요를 창출하고 월성1호기도 해체 준비를 위한 사전설계 용역을 수행한다. 또한, 관련 기술 역량을 고도화하고 개발된 기술이 현장에서 적용될 수 있도록 상용화 실증연구도 본격 추진된다. 원전해체연구소를 부산과 울산, 경주 등에 설립하고 한수원을 중심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핵심장비 개발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지난 4월에 정부는 원전해체연구소를 내년 하반기에 착공하기로 했다. 경수로 해체를 담당할 원전해체연구소 본원은 부산과 울산 접경 지역에 약 7만3,000 ㎡ 규모로 건설될 예정이며, 중수로 해체를 연구하는 분원은 경주시 나아산업단지에 약 2만4,000 ㎡ 규모로 건설될 예정이다. 또한 정부는 원전해체 전문 강소기업을 육성하고 전문인력 양성, 금융 지원도 확대해 산업생태계 활성화에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도 지원하고 원전해체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 및 정책 마련에도 힘쓴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7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제3차 원전해체산업 민관협의회’를 개최해 민간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이날 정부는 중소기업 연구개발 자금 지원 강화와 원전해체 단위사업을 세분화해 2022년까지 총 1,640억 원의 조기 발주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또 전문인력 양성에 정부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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