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전기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6월 4일(수) 오전부터 임기를 시작한 이재명 대통령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해법으로 산업화와 정보화를 이룩한 과거 정권의 ‘경부고속도로’ ‘인터넷 고속도로’에 이어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을 「10대 공약안」에 포함,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 확충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에 따라 신재생에너지와 전력인프라 분야를 비롯해 전기차, 이차전지 등 에너지신산업 분야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기회와 자원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격차와 양극화가 성장을 가로막는 악순환이 계속되게 할 수 없습니다. 저성장으로 기회가 줄어드니, 함께 사는 경쟁 대신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전쟁만 남았습니다. (…)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고, 성장의 기회와 결과를 함께 나누는 공정성장이 더 나은 세상의 문을 열 것입니다. 가난해도 논밭 팔아가며 자식들 공부시킨 부모 세대의 노력이 있었고, 그 노력이 지금의 대한민국의 성공을 이끌었습니다. 정부가 나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 지원하며 투자할 것입니다.

인공지능,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산업에 대한 대대적 투자와 지원을 통해 미래를 주도하는 산업 강국으로 도약할 것입니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따라 재생에너지 중심사회로 조속히 전환하겠습니다. 에너지 수입 대체, RE100 대비 등 기업 경쟁력 강화에 더하여, 촘촘한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로 전국 어디서나 누구나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게 해 소멸위기 지방을 살리겠습니다.

- 이재명 대통령 취임사 中 (출처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4년 기준 전국 발전·송전제약 발생지역 현황 (출처 : 이투뉴스)

현재 대한민국 전력망은 심각한 병목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22년 77건이던 출력제어 건수는 ’24~’25년 1000건 이상으로 확대될 정도로 재생에너지 발전소 가동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동해안 발전소 총 설비용량 약 17.9GW 중 최대 7.4GW의 전력이 송전망 제약으로 가동되지 못하는 등 계통 포화가 심각하다. 호남 지역은 154kV 송전선로가 36개 필요한데, 현재 2개에 불과한 상황이다. 송전망 적기 구축과 망(grid) 혁신이 없다면 수도권으로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어렵게 되고, 이는 반도체나 AI 등 산업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전력망 확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0년까지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를, ’40년까지 한반도 에너지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전력수급 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의 위원회 구성부터 심의·확정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했을 때,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제12차 전기본』 마련을 위한 준비가 곧 개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국 전력설비 현황도 (출처 : 한국일보)

‘에너지 고속도로’란 한마디로 ‘전기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전력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계통 안정화 설비, 고성능 장거리 송전선로, 에너지저장장치(ESS), 해상 HVDC 그리드, 분산에너지 인프라가 하나로 연결된 종합 설계도로, 대한민국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과 구조적인 위기를 타개할 대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현재 호남 지역의 바다에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기를 수도권까지 보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 이유는 거리가 멀어 전력 손실이 큰 데다, 해저나 육지를 거쳐 전기를 보내려면 복잡하고 고급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되는 것이 바로 ‘에너지 고속도로’ 개념이다.

에너지 고속도로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가 바로 HVDC(초고압직류송전)다. 해상풍력으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까지 보내기 위해서는, 먼저 교류로 생산된 전기를 직류로 변환하여 장거리로 효율적으로 송전한 뒤, 수도권에서 다시 교류로 변환하여 사용한다. HVDC 기술은 장거리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으로 대규모 전력을 이동시킬 수 있는, 에너지 고속도로의 핵심 인프라다.

① 민간 투자 유치 : 대규모 사업인 만큼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 투입뿐만 아니라 민간 투자 유치도 매우 중요하다.

② 국산기술 개발 : 현재 일부 핵심 부품은 해외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데,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위해 국산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시급하다.

③ 정책의 일관성 :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 방향이 바뀌면 기업들은 큰 리스크를 안게 된다. 따라서 일관된 정책과 예측 가능성이 사업 안정화에 매우 중요하다.

에너지 고속도로 단계별 구축안

대규모 해상풍력을 감싸는 U자형 전력망 권역 구상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발표에 따르면, ’40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0%대로 전망된다. 전국 229개 시군구 중 절반에 가까운 113곳이 인구소멸 위험지역이며, 17개 시도 중 11개 지역의 경제활동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지역 수요와 인구 기반이 무너지면 수도권의 생산 및 소비도 위축된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에너지와 산업을 연결하는 인프라를 신속하게 구축해야 한다.

에너지 고속도로가 들어서면 ▶태양광·풍력을 전국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고, 송전 병목을 해소하여 재생에너지의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 ▶AI 기반 스마트그리드로 수요 예측 및 실시간 분산제어가 가능해져 전기 흐름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지역 단위 분산형 전력시스템 활성화로 전력 손실, 송전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지역에 남는 재생에너지는 판매함으로써 수익으로 전환할 수 있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전력집약형 첨단산업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여 미세먼지와 탄소 배출을 줄여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현재 전력망은 50여년 전 지어진 대형 화력발전소 중심 설계로, 출력제한뿐 아니라 계통접속 순번 및 비용, 송전 우선권 등에 있어 재생에너지에 불리한 구조다. 때문에 급변하는 전력 흐름을 제어하는 계통 안정화 설비(동기조상기, STATCOM 등)의 확대가 시급하다. 또한 주파수, 전압 문제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계통 확보가 필요하다. 따라서 AI 기반 디지털 전력망으로 미래형 전력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실시간 전력 수요 예측과 제어로 효율을 높이고, 전기차·ESS와의 연결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지역별 전기요금제도 구체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전기는 지역에서 만들지만 혜택은 수도권 등 외부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전기가 생산된 지역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전력 도매시장에서 지역별 가격체계를 도입하고, 소비자 요금도 지역 여건과 산업 수요에 맞게 설계해야 한다. 망 확충, 발전사업자의 출력제어 보상, 산업 입지 전력 등이 통합적으로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에너지 고속도로 5대 설계 요소

② 서해안 고속도로(HVDC 기반 해상 그리드) : 육상의 선로 혼잡으로 인한 장거리 전력전송 제약을 해상 그리드 구축을 병행함으로써 에너지의 적기 공급에 기여할 수 있다.

④ 지역 간 에너지 고속도로 연결(장거리 송전선로 건설) : 첨단산업 클러스터와 지방의 재생에너지를 연결할 수 있는 국가 주도의 지원이 필요하다.

⑤ 지역 내 에너지 확보(분산에너지를 통한 지역생산-지역소비) : 분산에너지 확보, 섹터 커플링 기술을 통한 지역생산-지역소비 구조 구축을 통해 근거리 내 효율화를 동시에 추진하며 지역 균형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시급한 전력망 확충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서해안 HVDC 사업을 중심으로)』국회토론회 발제자 및 토론자들 (출처: 전기ON 유튜브)

에너지 고속도로 프로젝트는 단순히 전기를 이동시키는 것을 넘어, 한국의 에너지 독립과 친환경 산업 육성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해상풍력 중심의 탄소중립 에너지 정책 ▶고급 전력 인프라 기술을 보유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 ▶전선업계 및 관련 장비 산업의 일자리 창출과 산업 부흥 등 단순한 인프라 사업을 넘어 국가 산업 전략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태양광 업계는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공약에 반색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실효성 없는 정책 반복으로 또다시 시장에 혼란이 재현될까 봐 우려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태양광 보급은 늘었지만, 계통과 수용성이 뒷받침되지 않아 전력망 포화 및 가격 폭락으로 이어진 바 있다. 태양광 시설의 추가적인 보급 이전에 계통 확충에 대한 비전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풍력 업계도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풍력 사업 인허가권을 가진 국방부, 해수부 등 정부기관이나 지자체 공무원들의 인식 전환으로 업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해상풍력 특별법」 시행령 및 시행 규칙을 마련하는 데 있어 보다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차전지 업계 또한 침체되어 있는 업계가

국내 시장 활성화를 토대로 재도약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 기간 중 배터리 산업의 성장을 위한 공약으로 「K-배터리 정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국내 생산·투자 촉진을 위한 세제 지원 ▶이차전지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R&D 투자 확대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기술 상용화 지원 등이다.

한편, 이언주·김성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전기신문과 공동 주최·주관으로 6월 10일(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시급한 전력망 확충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서해안 HVDC 사업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는 전력 산업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하여 『11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에 따른 서해안 HVDC 건설 계획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논의했다.

먼저 발제에 나선 김형근 한국전력공사 신송전개발처장은 전력 수요 급증과 함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전력망 확충의 현실을 설명하고,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한 각 분야의 대책을 강구했다. ’38년 국내 전력 수요는 ’23년 대비 32% 증가한 129.3GW에 달할 전망이다. 반면, 전력 자급률이 낮은 수도권으로 재생에너지 전력을 보내는 송전망은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서해안 HVDC 사업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복잡한 인허가 절차에 발목을 잡힐 우려가 있다. 때문에 김 처장은 “예타 면제 등 제도적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최근 <동해안-신가평 HVDC> 공사가 하남시의 동서울변전소 증설 인허가 불허로 인하여 중단된 사례를 예로 들며, “서해안 HVDC 사업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역할과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고속도로 실현을 위한 통합적 계통계획과 해상 그리드의 역할’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김승완 한국에너지공과대학(KENTECH) 교수는 에너지 전환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설계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 정부가 내세운 ‘에너지 고속도로’ 공약이 5대 설계 요소로 구성된 패키지형 인프라 전략임을 짚으며, “이 중 일부가 지연되거나 실행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복수의 시나리오와 보완책(플랜B)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LS전선은 네덜란드 해상풍력단지에 해저 케이블을 공급했다. (제공 : LS전선)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장길수 고려대학교 교수를 좌장으로 ▶최성준 산업통상자원부 과장 ▶이승준 퍼시피코에너지코리아 부사장 ▶서영민 한국해상그리드산업협회 사무국장 ▶박승기 LS전선 상무가 ‘바람직한 전력망 확충과 합리적인 서해안 HVDC 건설 방안’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최성준 산업부 과장은 서해안 HVDC 건설의 가장 큰 장애물로 꼽히는 재정 확보 방안에 대해 언급하며, 한국전력공사의 적자로 인해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일축했다. 그는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변수가 있을 수 있지만, 현시점에서는 안정적인 자금 확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남풍력산업협회 부회장으로서 해상풍력 업계를 대표해 참석한 이승준 부사장은 업계에서 체감하는 에너지 고속도로의 필요성과 해외사례를 통한 사업 성공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보급에 따라 HVDC 보급은 세계적인 추세가 됐으며, 국내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승기 LS전선 상무와 서영민 해상그리드산업협회 사무국장은 국내 기업들의 HVDC 기술력 및 관련 역량에 대해 강조했다. 발표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이미 정부가 목표로 한 HVDC 보급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만큼 제조역량을 갖췄으며, 선박을 비롯한 인프라 투자도 발 빠르게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