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전기

영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해상풍력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해상풍력 강국이다. ’23년 영국 정부가 발간한 《UK Offshore wind report 2023》 보고서에 따르면, ’23년 한 해 동안 해상풍력을 통해 공급한 전력은 49TW 규모로, 이는 영국 가정의 50%에 전력 공급이 가능한 양이다. 영국 정부는 ’30년까지 해상풍력의 발전용량을 ’23년 기준 14.7GW에서 55GW로 4배 증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해상풍력 확대 정책에 힘입어, 영국의 해상풍력 시장에 지속적인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참조 KOTRA 외

영국 해상풍력 홍보 포스터 (제공 : 영국 정부)
해상풍력 발전은 바다에 설치된 풍력 터빈을 이용해 풍력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바닷속 지반과 수심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하부구조물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를 해저에 고정하는지/부유하는지에 따라 크게 ‘고정식’과 ‘부유식’으로 구분된다. ▶고정식 하부구조물은 해저 지반에 구조물을 설치해 풍력발전기를 고정하는 방식으로, 일반적으로 수심이 60m 이하인 경우에 사용한다. ▶부유식 해상풍력 구조물의 경우, 깊은 바다의 해수면에 구조물을 띄운 상태에서 그 위에 발전기를 설치한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대부분의 해상풍력 발전소는 고정식 하부구조물 기술을 기반으로 하나, 최근에는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많이 건설되고 있다. 깊은 수심에 설치가 가능하여, 먼 바다의 풍부한 바람을 활용할 수 있는 부유식 해상풍력은 채광과 소음 문제없이 에너지 개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영국에서는 특히 스코틀랜드가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소의 메카로 뜨고 있는데, 전 세계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기의 3분의 1이 스코틀랜드에 설치되어 있다. 국가전력망에 연결된 단지 중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단지 ‘킨카딘(Kincardine)’ 또한 스코틀랜드 북동부 지역에 있다.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종류 (출처 : SK에코플랜트)
영국 해상풍력 관련 공급망·투자 수요

영국 정부는 고정식 및 부유식 해상풍력 산업에서 전략적 우선순위를 정하고, 해상풍력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지속적인 혁신을 공언했다. 정부가 정한 우선 투자대상 구성 요소와 공급망 분야는 다음과 같다.

-티스사이드(Teesside), 험버(Humber), 크로마티(Cromarty), 모레이 퍼스(Moray Firths) 지역의 잠재력 높은 투자 기회

오스테드가 개발한 세계 최대 규모의 ‘혼시(Hornsea) 2’ 해상풍력단지는 ’22년 8월 종합운전에 들어갔다. (출처 : Ørsted)
‘해저 임대권 경매’로 민간 사업자 선정

영국은 ‘해저 임대권 경매(Seabed Lease Auctions)’를 통해 정부가 관리하는 해역을 민간에 장기 임대하여 해상풍력 개발 사업자를 선정한다. 계획된 시장 규모에 따라 사전에 정해진 절차와 기준에 의거하여 적합한 입지를 선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입찰을 통해 사업자가 결정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사업자의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차액결제거래(CfD, Contract for Difference)’ 방식으로 계약이 체결된다. CfD는 15년간 유효한 장기 계약 형태로, 전력 도매가격의 변동성으로 인한 사업자의 위험을 완화한다. 구체적으로, 해상풍력 프로젝트 입찰에서 기준 가격(Strike Price)을 설정한 뒤, 도매가격이 기준보다 낮으면 정부가 차액을 보전하고, 반대로 기준보다 높으면 정부가 초과 수익을 환수하는 구조다. 이 제도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자본 비용을 절감해 시장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영국 왕실 자산을 관리하는 Crown Estate가 잉글랜드, 북부 아일랜드, 웨일즈 해역의 입찰을 담당하고 있다. Crown Estate Scotland는 스코틀랜드 해역과 인접 지역의 입찰을 책임지고 있다. Crown Estate는 영국 정부가 소유하지만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공공자산관리 기관으로, 주로 영국의 왕실 자산을 관리한다.

’22년 2월, 영국 정부는 CfD 경매 주기를 기존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해 선정 빈도를 높였다. ’24년 9월에 진행된 6차 입찰(Allocation Round 6)에서는 총 4.9GW 규모의 해상풍력 프로젝트 9개가 선정됐으며, ’25년 8월에 7차 입찰(Allocation Round 7)을 진행했다.

7차 입찰에서는 ‘청정 산업 보너스(Clean Industry Bonus) 제도’가 도입되었으며, 공급망의 지속 가능성에 투자하는 신청자들에게 추가적인 CfD 수익 지원이 제공될 예정이다. 또한, 현재 고정식 해상풍력 프로젝트에만 적용되고 있는 ‘CfD 단계적 구축(Phasing)’ 정책을 부유식 해상풍력 프로젝트에도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CfD 단계적 구축’은 프로젝트를 여러 단계로 나누어 각각의 단계에 별도의 CfD를 제공해, 전체 건설 과정의 위험을 줄이도록 설계된 방식이다.

유럽 최대 규모로 건설된 세아윈드의 영국 티스사이드 모노파일 공장 전경 (제공 : 세아윈드)
해상풍력 발전 속도에 비해 부족한 전력망

현재 영국 해상풍력 발전의 가장 큰 장애 요소로 해상풍력 단지와 육지를 연결하는 ‘전력망 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경제 전문지 《블룸버그(Bloomberg)》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전력망 제약으로 인해 발전된 전력을 육지로 전달할 수 없는 일부 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하고, 그 대신 가스 발전소를 가동하기 위해 약 10억 파운드 이상의 혼잡비용(congestion costs)을 지출하고 있다. 기존 전력망이 빠르게 확장되는 풍력발전 용량을 수용하지 못하면서, 전력망 확충 및 개혁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다.

영국 에너지 규제기관(Ofgem)은 ’09년부터 해상 송전 운영자(Offshore Transmission Owner, OFTO)를 선정하는 입찰 방식을 통해 전력망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11차례의 입찰 라운드가 진행됐으며, 선정된 기업은 해상풍력 전력망을 직접 소유하고 운영 및 유지보수를 책임진다. 재생에너지 기업 관계자들은 “영국이 현재의 선도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향후 해상풍력 발전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OFTO 제도’의 개혁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4년 영국의 컨설팅 기업 Grand Thorton이 발간한 《Offshore Transmission Owners》에 따르면, 추가적인 OFTO 개발 지원을 위해 중기적으로 최소 160억 파운드 이상의 추가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넷제로(Net-zero) 목표달성에 해상풍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빠른 해상풍력 발전 속도에 맞춰 송전망 건설을 위한 투자와 지원도 필수적이라는 분석이다.

영국 정부는 ‘청정에너지 초강대국으로 전환’이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30년까지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약 500억 파운드 규모의 건설 자본 지출이 필요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영국 내 해상풍력 프로젝트의 기획, 개발, 건설 및 설치, 운영과 유지 보수 등 전체 수명 주기에 걸쳐 다양한 기회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케이블, 핀파일, 모노파일 등 해상풍력 관련 기자재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영국 해상풍력 마켓 진출에 유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에 진출한 한국기업 중 가장 대표적인 기업은, 국내 강관산업을 선도해 온 1위 기업 세아제강의 자회사 ‘세아윈드(SeAH Wind)’다. 세아윈드는 영국 내 유일한 해상풍력 모노파일 하부구조물 공급기업으로, ’21년 세아제강 지주그룹의 영국법인으로 설립됐다. 영국 북동부 티스사이드(Teesside)에 모노파일 공장을 설립하여, 올해 상반기부터 본격적인 상업 생산에 들어갔다. 세아윈드의 모노파일 공장은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직접 방문해 기대감을 드러낼 만큼 영국 현지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은 자국 내 해상풍력 산업 공급망 강화를 위해 영국산 기자재 사용 확대, 해외기업 현지화 등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21년에는 『해상풍력 제조 투자 지원 제도(Offshore Wind Manufacturing Investment Support Scheme, OWMIS)』를 통해 영국 내 판매 파이프라인을 강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브렉시트 이후 기존 자국산처럼 유통되던 유럽산 모노파일이 수입산으로 간주되었다. 이에 세아제강에서는 영국 내에서의 모노파일 생산이 유망한 비즈니스 기회가 될 거라고 예측했다.

세아제강은 ’15년 이전부터 해상플랫폼(변전소) 제품 시장에 중간재를 납품해 왔고, 해상풍력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16년부터는 유럽/대만 등지의 다수 프로젝트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덕분에 글로벌 대형 고객사들은 세아제강을 해상풍력 발전시장의 주요 공급망 기업으로 인식해왔고, 영국 정부 및 산업 관계자들과도 지속적인 정보 교류를 해왔다.

그러던 중 ’19년 전후로 ‘OWMIS 프로그램’이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룹 내에서 참여를 검토한 뒤, ’20년부터 영국 정부와 접촉을 시작했다. 이후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현지 투자가 가능한 8개 항만에 대한 실사를 진행하고,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토지 개발사와 MOU를 체결하며, 부지 환경에 맞는 시나리오별 엔지니어링 계획까지 철저히 준비했다. 이를 바탕으로 OWMIS를 주관한 영국 에너지 안보 및 넷제로부(DESNZ) 및 산업통상부(DBT)와 협상을 진행했다.

한편, ‘혼시 3(Hornsea 3)’ 프로젝트의 투자계획이 본격화된 직후부터 세아윈드는 오스테드(Ørsted) 社와 별도로 접촉하고 있었다. 오스테드는 XXXL급(직경 10m 초과) 모노파일 공급자가 필요했고, 이에 따라 기술 개발 및 상업화를 위한 협의가 진행되어 실질적으로 수의계약에 준하는 형태로 수주가 진행됐다. 영국 정부, 오스테드, 세아윈드 모두에게 유리한 ‘윈-윈-윈’구조의 계약이었다.

지난 2월 13일(현지 시간)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세아윈드의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제조 공장을 방문해 시설물을 둘러보았다. (제공 : 세아윈드)
철저한 사전 조사 및 준비 필요

한국은 해상풍력 주요 기자재 공급에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하부구조물 시장의 경우, 세아윈드를 위시한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영국, 유럽, 대만 등에 오랫동안 납품을 해왔다. 해상풍력 터빈의 주요 부품인 타워 또한 한국의 CS윈드 등 주요 기업이 상위권에 진입해 있으며, 전력 송전용 케이블 및 변압기 등에서도 경쟁력과 높은 신뢰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산업 내 진입이 다소 까다로운 터빈 및 블레이드 등 핵심 분야는 아직 괄목할 만한 수출실적이 없고, 프로젝트 기획 및 건설 분야도 글로벌 시장에서의 실적이 저조한 편이다.

영국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제품 및 부품을 납품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지정되어 있는 산업규격이나 고객사에서 특별히 요구하는 구체적인 사양을 미리 파악하고 준비해두는 것이 필수이다. 고객사의 구매 프로세스에 따라 제품의 납품 가능 여부가 결정되므로, 관련 인증 및 표준을 사전에 충족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 ISO 등 품질관리시스템을 적절히 확보해 고객사의 자재 생산 관리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세아윈드 관계자는 “수주에서 납품까지 다양한 변화 상황에 대응하는 프로젝트 관리 능력 또한 필수”라고 전했다. 제품을 잘 생산하더라도 납기 문제로 프로젝트가 적자로 마무리되는 사례가 상당히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유연하게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영국은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유럽 국가보다 소통이 편하고 고용시장도 유연한 편이다. 현재 유럽 내 다른 국가들도 영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해상풍력 산업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 손쉽게 확장할 수 있는 수출시장이 근접해 있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아직은 현지 정보가 많이 없는 편이고, 제조업 인프라가 풍부한 한국보다는 열악한 부분이 많아 진입장벽이 높은 면이 있다. 영국 해상풍력 산업 참여를 준비하는 기업이라면 사전에 관련 정부 기관 및 고객사와 많은 논의를 통해 여러 가지 지원을 확보하고, 기술이나 재무적인 측면도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