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수요 예측과 공급 능력 판단 실패, 기관 간 상황 정보 미공유, 대국민 홍보 지연 등 지난해 발생한 9·15 순환 단전은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단전 부하 최대 500만㎾, 단전 656만 가구, 16개 산업단지 5775개 입주 업체 및 군사 시설 124곳 마비, 승강기 갇힘 사고 등 긴급구조 1907건(2905명). 전압 유지율 99.99%, 주파수 유지율 99.9%, 호당 단전 시간 15.18분 등 세계 최고의 전력 품질을 자랑하는 국가에서, 그것도 송·배전망이 아닌 수급 예측 실패로 발생한 후진국형 정전 사고였다. 그 후 정부 및 전력 기관에서 정확하고 적절한 수급 체계, 기관간 위기 대응 협조 체계, 수급 안전을 위한 소비 절약과 공급 안정화 등 갖가지 대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학계, 연구계 등에선 대증요법적인 단기 대책에 불과하다며 보다 근본적이고 효율적인 중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9월 20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9·15 순환 단전 위기인가, 기회인가'란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본지는 포럼 중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과 문승일 서울대 교수의 대담을 통해 9·15 순환 단전 후속 조치와 향후 전략에 대해 살펴보았다.
문승일 서울대 교수 | 9·15 순환 단전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나라 전력 계통 운영 사상 최초의 단전이었기에 국민에겐 충격이었습니다. 전력 전문가인 저도 우리나라 전력 수급 시스템은 세계 최고인 줄 알았는데'이럴 수가'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홍석우 지경부 장관을 모시고 9·15 순환 단전 후 1년간 정부에서 어떤 노력을 했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장관님, 9·15 순환 단전은 처음 겪은 일이었기에 여러 가지 개선할 점이 드러났습니다. 정부는 지난 1년간 어떤 일을 해왔는지요.
홍석우 장관 | 정확한 수요 예측은 매우 중요하며 출발점입니다. 이전엔 전력거래소에서 혼자 수요를 예측했는데, 그 후 한전과 기상청의 도움을 받아 수요 예측 시스템을 많이 보강했습니다. 둘째로 24시간 정비 체제를 유지해 공급 누수 현상을 없앴으며, 예비력의 정확성을 높이고자 노력했습니다. 일례로 이전엔 2시간 후에야 공급 가능한 전력까지 예비력에 포함했지만, 그 후 20분 이내 공급 가능한 것만 예비력에 포함했습니다.
셋째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어긋났을 때 시행하는 수요 관리의 정확성을 높였습니다. 이전엔 기업에 협조를 받으면 300만㎾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9·15 순환 단전을 겪으니 300만㎾의 30% 정도 밖에 안 됐습니다. 이이 따라 실지로 300만㎾에 근접하도록 수요 관리 참여 업체를 하나하나 접촉해 정확성을 늘렸습니다. 수요 관리, 공급 예비력, 수요 관리 이 세 가지 시스템을 개선했습니다. 9·15 순환 단전사태는 나쁜 경험이지만, 그것이 헛되지 않도록 보완했다고 생각하며 꾸준히 보완점을 검토하겠습니다.
문승일 교수 | 장관님 말씀을 들으니 9·15 순환 단전이후 많이 개선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장관께서 설명한 것들은 단기적인 대책이기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따져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지경부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할 중장기대책은 무엇인지요.
홍석우 장관 | 3개월 전에 수요를 예측하고 대책을 세우는데, 3개월 전 수요 관리 대상 기업에 작업 시간과 휴가 기간 조정을 부탁해야만 그와 관련해 기업도 노조와 협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3개월 전 방향성 정도야 알겠지만, 일기 변화에 따른 수요를 구체적으로 예측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향후 3개월 전 수요 예측을 토대로 주별, 일별 수요 예측을 유기적으로 믹스해 노하우를 보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지금까지 발전 공급 능력, 수요 예측 이런 것만 얘기하고, 그 사이에 전력을 전달하는 송·변전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국민의 높은 의식과 많은 민원으로 송전철탑 하나 세우는 데도 발전소 하나 짓기만큼 어렵습니다. 앞으로 송전과 관련해 신규 설비 설치에 따른 보상 규정과 아울러 노후 설비를 보완하는 데에도 관심을 둬야 합니다. 그리고 공급력을 안정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현재 공급력은 지난 전력 수급 기본 계획보다 부족한데, 왜냐하면 민원에 따른 건설 지연으로 발전소를 20% 정도 못 지었기 때문입니다.
문승일 교수 |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전력 수요 감축 지원금에 관한 문제입니다. 기업에 돈을 퍼준다, 돈을 주고 단전을 막는다는 시각과 비판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 기업은 OECD 국가 중 가장 싼 요금으로 전기를 공급받기에 이미 지원금을 받는 상태인데, 거기에 감축 지원금까지 주면 이중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이 제도는 현재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에 그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것으로, 올해 감축 지원금을 많이 받은 기업이 과연 내년에 수요를 줄일까 하는 걱정마저 듭니다. 또한, 감축 지원금의 대부분을 전력 산업기반 기금에서 조달하는데, 이 기반 기금은 전기요금에 일정 비율을 덧붙여 국민에게 준조세 성격으로 걷기에 불공평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올해 전력 분야 R&D 비용도 많이 삭감한 것으로 압니다.
9·15 순환 단전 위기를 기술 개발로 극복해야 하는 데, 여기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장관님의 솔직한 설명을 기대합니다.
홍석우 장관 | 감축 지원금이란 용어는 오해 소지가 있습니다. 수요 관리에 참여한 기업에 혜택이 아니라 그로 인해 입은 손실을 일부 보상해 주는 개념으로 보아야 합니다. 발전소를 한 개 짓는 데 드는 비용이 조 단위입니다. 그러한 발전소를 충분히 지어 예비력을 펑펑 갖고 발전소를 쉬게 하는 것이 나은지, 발전소를 조금 덜 짓더라도 필요할 때 수요 관리에 돈을 쓰는 것이 나은지 국가적으로 따져봐야 합니다. 학계에선 적정한 양의 수요 관리가 경제적이란 입장이며 선진국도 그렇게 합니다. 그 한편으로 일본에선'원전 제로'정책을 펴겠다고 했더니 일본 기업들이 엄청나게 반대했습니다. 경단련 회장은 비싼 전기요금으로 더는 기업을 할 수 없다며 총리 자문 기구에서 탈퇴했습니다. 여기에 비춰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적정한 수준이냐는 고민해 봐야겠지만, 적어도 그걸로 인해 산업 경쟁력이 향상됐으며 실제 일본 등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포괄적으로 국민 경제에 도움을 주므로 단순히 값싼 산업용 전기요금은 좋지 않다 이렇게만 얘기할 게 아닙니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싸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었기에, 그 부분을 포함해 적정한 전기요금이 어느 정도인지 고민하겠습니다.
 문승일 교수 | 장관께서 수요 관리를 포함해 전기요금까지 포괄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수요 관리를 하지 말자, 전기요금을 무조건 올리자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수요 관리 제도는 필요하며 선진 각국에도 있습니다. 문제는 감축 지원금 제도를 너무 단기적 안목에서 시행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홍석우 장관 | 그 부분에 대해 충분히 반성하겠습니다.
문승일 교수 | 그때 정부나 전력거래소는 200만∼250만㎾ 감축을 예측했는데, 실제 국민은 550만㎾를 줄였습니다. 이 신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국민이 보조금 없이도 전기가 어렵다는 정보를 듣고 수요에 반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감축 지원금 중 일부를 스마트 미터기 보급에 사용해 국민에게 전력 정보를 알려야 합니다. 아니면 피크 시 전기요금을 10배 정도 높여 전기 사용을 제한하거나, 그 가격으로 에너지 저장 장치나 비상용 발전기 소유자에게 전기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이 모두 3년 전 지경부가 만든 스마트 그리드 국가 로드맵 내용입니다. 저는 9·15 순환 단전은 큰 그림에서 우리나라 전력 계통이 새로 태어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장관님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홍석우 장관 | 문 교수님 의견에 100% 동감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역동적인 DNA, 필Feel을 받으면 열심히 하고 돕는 그런 것이 있기에 6월 21일 단전 훈련때 그런 효과가 나타났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난여름부터'아싸가자'절전 운동을 펴왔으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스마트 그리드 법도 만들고 1차 기본 계획도 세웠지만, 스마트 그리드는 기술 개발과 기기 공급 등 가속도를 내기엔 갖춰야 할 조건이 많습니다. 9·15 순환 단전을 계기로 그 부분을 확산하도록 적극 노력하겠습니다.
 문승일 교수 | 앞에서 전기요금에 관해 개략적으로 말씀하셨는데 몇 가지 더 묻겠습니다.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요금은 OECD 국가에 비해 매우 저렴합니다. 더욱이 전기요금을 공공요금으로 관리하면서 다른 에너지에 비해 상대적 격차가 너무 벌어졌고, 그러다 보니 가스나 석유가 아닌 전기로 난방하는 쪽이 더 싼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나라가 됐습니다. 현재의 전기요금 구조로 수요를 적절히 유지 관리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이 문제 때문에 한전 적자가 매년 누적되고 있습니다. 한전이 발전사에서 구매하는 요금 이하로 전기를 판매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한전 기업 문제뿐만 아니라, 결국 설비 투자나 유지 관리 비용이 줄어들기에 전력 공급에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물가 당국의 상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금 이 순간 국민에게 장기적 안목에서 전기요금을 현실화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전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기업과 국민이 그에 대해 장기적으로 준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홍석우 장관 | 지금의 전기요금이 적정한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기 관련 거버넌스Governance 체계, 전기요금 이외의 제반 구조, 공기업의 운영 구조 및 효율성 등 이 모두를 종합적으로 고민하겠습니다. 그래서 올해 하반기에 관련 기업과 협력해 그 결과를 갖고 전기요금을 얼마나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는지 결론을 내겠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은 전기요금이 어떻다고 선언해야 국민이 준비할 것이 아니냐 하셨는데, 저는 그 부분에 대해 3개월 정도 유보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정부는 왜 여태까지 검토하지 않았느냐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지난해 9·15순환 단전 후 그 뒷마무리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썼는 데 이젠 그 고민을 할 때가 됐습니다. 그 결과가 나오면 올해 할 수 있는 조치를 하고, 시간이 필요하면 다음 정부에 자료를 넘겨주겠습니다. 그러한 노력이 9·15 순환 단전 후속 조치의 마무리가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문승일 교수 | 제게 주어진 시간을 다 쓴 것 같습니다. 마무리 말씀 부탁합니다.
홍석우 장관 | 9·15 순환 단전 후 장관으로 와서 시스템을 점검하며 느낀 점 역시 철저히 준비해야 하지만 결국 사람이란 것입니다. 지금 전력 관계자들이 혼신을 다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에 앞으로 9·15 순환 단전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말이 헛되지 않도록 전력 관계 기관장과 임직원 여러분에게 온 힘을 기울여 노력해 주길 당부합니다.
문승일 교수 | 바쁘신데 시간을 내준 장관님 감사합니다. 올여름 장관께서 남긴 두 개의 유행어가 있습니다.
하나는'국민발전소'고, 다른 하나는'아싸가자'입니다. 장관께서 국민 발전소를 외치면, 우리가 아싸가자를 화답하며 대담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nergy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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